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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부터 일제강점기까지, 군산 속 역사의 현장

기사승인 [540호] 2021.09.09  13: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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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유도, 이영춘 가옥 등 군산의 역사가 담긴 문화재 돌아보기

 근대문화의 도시로 널리 알려진 군산은 일제강점기 시절 모습을 잘 보존해왔고, 그 문화재를 잘 살려 각종 축제를 여는 등 관광자원으로써 활용해왔다. 그 대표적인 예로 매년 10월에 열리는 ‘군산 시간여행 축제’가 있는데, 올해는 여기에 더해 기념비적인 행사, ‘등록문화재 제도 도입 20주년 기념행사’가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군산시와 문화재청의 공동 주관으로 지난 10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되었다. 이처럼 군산의 문화재가 주목받는 현재, 각 시대의 군산 문화재를 소개하고자 한다.

 

[고려 문물교류의 허브, 선유도]

▲ 선유도 고려유적 /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첫째로, 고려시대 군산 문화유산의 대표 주자인 ▲‘선유도 고려유적’을 소개하겠다. 군산 선유도 고려유적은 전라북도 기념물로써, 2017년에 등록되었으며,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선유도리 134에 위치해 있다. 송나라 사신인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에서는 선유도가 송나라 사신을 영접했던 곳으로 △숭산행궁, △군산정, △오룡묘, △자복사, △객관 등이 위치해 있었다고 적혀 있다. 또한 2014년 군산대학교 박물관의 숭산행궁지와 군산정으로 알려진 망주봉 남쪽 기슭의 평탄지 조사 결과 건물지와 관련된 △적심시설 △담장시설 △배수로 △최상급 청자 △명문 기와편 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로써 선유도는 고려시대에 문물교류의 허브로서 기능했던 역사적 현장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 대학 역사철학부 역사전공 곽장근 교수 또한 전북일보에서 “선화봉사고려도경의 내용을 고고학 자료에 접목시켜 추론한다면, 본래 선유도 망주봉 주변에는 고려시대 건물지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한 바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인 ‘탑동삼층석탑’ 또한 고려시대의 문화유산이다. 유적건조물로 1974년에 등록되었고, 군산시 대야면 축산리 66-1번에 위치해 있다. 1층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세운 후 머리장식을 얹은 탑으로, 백제탑 양식을 일부 보이고 있다. 옛 백제 지역에 세운 고려시대의 탑인데, 백제탑 양식의 흐름이 보여 지방적인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조선의 정신을 담은 대성전과 사당]

▲ 임피향교대성전 / 출처 : 국가문화유산포털

 둘째로, 군산의 조선시대 문화재로는 ▲‘임피향교대성전’이 있다. 전라북도 문화재 자료로 1984년 등록된 이 유적은 현재 향교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향교는 조선시대에 존재했던 지방 국립교육기관인데, 제사공간과 교육공간이 동시에 존재했다. 임피향교는 조선 태종 3년(1403) 흑산리에 처음 지어졌는데, 숙종 36년(1710)에 지금 위치인 임피면 임피향교길 46에 위치하게 되었다. 임피향교 대성전의 안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현재는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다른 조선시대 문화재로는 전라북도 기념물인 ▲‘최호장군유지’가 있다. 최호장군 유지는 유적건조물로 1976년 등록되었다. 이 문화재는 조선 중기의 무신인 최호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최호 장군은 선조 9년(1576)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간 후, 여러 관직을 거쳐 선조 27년(1594)에 함경도 병마절도사로, 선조 29년(1596)에는 충청도 수군절도사로 이몽학의 난을 평정했다. 이후 정유재란에서 전사하였고, 선조 37년(1604)에 이몽학의 난을 진압한 공으로 청난공신 2등에 봉해졌다. 이 사당은 최호의 후손인 최호선이 영조 5년(1729)에 세웠다. 이는 전북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421번지에 가면 만나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의 복합 건축양식, 이영춘 가옥]

▲ 이영춘 가옥 / 촬영 : 박미혜 기자
▲ 이영춘 가옥 내부 / 촬영 : 박미혜 기자

 셋째로, 일제강점기 시대의 문화재로 소개할 것은 ▲‘이영춘 가옥’이다. 일제강점기 시절, 전북지역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한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 리헤이는 개정동에 한식, 양식, 일식의 복합 건축양식인 별장주택을 지었다. 이 건축물의 외부형태는 유럽의 주거형식을, 평면 구조는 일식의 중복도형 평면을, 내부에는 양식의 응접실과 한식 온돌방이 결합되어 있다. 해방 후에는 주인을 잃은 이 주택에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역할을 해낸 ‘한국의 슈바이처’, 쌍천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게 되면서 ‘이영춘 가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영춘 박사는 병원, 학교, 영아원 등의 각종 의료사회복지시설을 설립했을 뿐만 아니라 국내 최초로 양호실을 개설하고, 농민 의료보험을 도입한 인물이다. 그는 일식의 다다미방을 온돌방으로 개조한 것 외 외관의 구조를 포함한 전체적인 주거의 틀을 유지하였다. 현재 이 건물은 근대의 건축물로서 △당대 주거문화의 이입과 양상 △절충적인 매력이 돋보이는 건축적 구성 △일제강점기 시대의 토지 수탈 역사를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 △해방 후 건물의 주인이었던 이영춘 박사의 지역 의료 활동의 업적으로 다방면으로 깊은 의의를 지닌 문화재이다. 일제강점기 시대를 대표하는 또 다른 건축물로는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이 있다. 첨부된 사진은 군산 근대건축관 내부의 전시된 과거 조선은행의 모습으로, 한국과 대륙의 경제를 수탈하고 식민지 지배를 위한 대표적인 금융시설로서 1922년에 장미동에 건립되었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조적조 건축물로서 4층 높이를 2층 건물로 하여 정면에는 돌출된 현관을 중심으로 평아치를 5개 세웠고, 양쪽에는 각각 반원형의 아치를 두었으며 지붕은 물매를 급하게 처리하였다. 이 또한 해방 후, 한국은행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전주로 이전된 후에는 한일은행 군산지점으로 사용됐다. 이는 △위치적으로 내항에 인접하여 식민지 금융기구의 역할을 한 역사적 의미와 더불어 △규모에 따른 건축사적 가치로 일제강점기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꼽힌다.

 

▲ 군산 근대건축관 내부 / 촬영 : 박미혜 기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명언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역사를 알고, 우리의 문화재를 지킬 의무가 있음을 의미한다. 1962년에 제정된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에 따르면 조상들이 남긴 ▲문화재는 정의와 형태에 따라 크게 △유형 문화재 △무형 문화재 △민속자료 △기념물로 구분된다. 또, 네 가지로 구분된 문화재는 세부적으로 분류된다. 이번 문화에서는 군산의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군산 지역 문화재만을 다루었지만, 우리나라 각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문화재는 무수하고 다양하다. 조상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인 문화재, 옛 과거의 유산이 온전히 세월의 무게를 견뎌낼 수 있도록 우리도 함께 노력해야 한다. 

유진하 기자, 박미혜 기자 jinhauu@kunsan.ac.kr, algp1289@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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