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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황룡학술문학상 학술부문 대상 수상작 (독서리뷰)

기사승인 [0호] 2021.02.23  16: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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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개의 불안과 카오스의 세계

세 개의 불안과 카오스의 세계

- 등장인물의 불안 심리를 통해 본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1. 불안 또는 [살인자의 기억법]의 이르는 통로

2. 죄의식의 부재와 죄의 결과로서의 불안 ; 김병수의 경우

3. 악에 대한 불안 : 은희의 경우

4. 죄를 묻지 못하는 자의 불안 : 박주태의 경우

5. 죄의식 없는 죄인과 죄를 묻지 못한 자의 죄의식, 혹은 불안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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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안 또는 [살인자의 기억법]의 이르는 통로

 

본 논문은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의 핵심적인 정동인 ‘불안’을 중심으로 [살인자의 기억법]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많은 사람이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었지만, 이 소설의 핵심적인 정동이 ‘불안’이라는 것에 주목한 이는 거의 없다. 아마도 [살인자의 기억법] 특유의 간결하고 남성적인 문체 때문일 것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이 일관되게 유지하고 있는 자기확신적인 어투와 급격한 사건 전개 탓에 [살인자의 기억법]은 주로 뒤틀린 방식으로 초인을 꿈꾸었던 악마적 존재의 좌절 이야기로 읽혀왔다. 하지만 그 남성적인 문제 이면에 작동하고 있는 정동이 있으니 그것이 다름 아닌 ‘불안’이다. 사실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작중 화자를 포함 [살인자의 기억법]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에 공통된 감정은 ‘불안’이다. 물론 처음부터 불안한 존재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둘 사건이 전개되면서 이 모든 인물은 제각각의 이유로 불안해진다. 그러므로 [살인자의 기억법]의 핵심 서사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느끼는 불안이 어떤 이유로 발생하고 어떤 때 더 강화되며 최종적으로 그 불안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를 꼼꼼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다. 바로 그때 [살인자의 기억법]을 가로지르는 주제 의식을 정확하게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문제의식 혹은 이 소설의 진리 내용을 읽어내려면 우선 일단 불안의 개념에 대해 정밀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필자는 [살인자의 기억법]의 문제의식을 짚어내기 위해 키에르 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에 주목하고자 한다. 불안에 대해 많은 연구들이 있지만 키에르 케고르의 불안의 개념에서 나오는 불안이 작품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키에르 케고르는 순진무구함 속에서 불안이 생겨난다고 했다. 불안은 꿈을 꾸고 있는 정신의 규정이므로 심리학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불안의 개념은 심리학에서 별다른 연구를 하지 않은 상태이므로 공포나 비슷한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불안은 무지의 상태인 순진무구한 상태에서 나오며, 무는 곧 불안을 낳는다. 기억을 잃어버린 상태를 곧 꿈을 꾸고 있는 상태라 보며, 이것은 불안의 시초라 볼 수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불안은 발생하며, 이것은 정신적인 의미와 관련되어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의 등장인물들이 느끼는 불안은 키에르 케고르가 말하는 불안과 거의 닮아 있으며, 그러므로 [살인자의 기억법]의 인물들이 겪는 불안 심리의 변화 과정을 키에르 케고르적 불안과 연관 지어 설명하면 [살인자의 기억법]의 주제 의식을 역사철학적 맥락화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 논문은 단순히 등장인물의 불안 심리의 변화를 통해 작품을 분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마지막엔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예정이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변화는 작가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어야 작품의 분석을 좀 더 완벽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 부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2. 죄의식의 부재와 죄의 결과로서의 불안 : 김병수의 경우

 

2.1. 불안의 시초

 

금강경을 읽는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일으킬지니라”(살인자의 기억법, 2013, 9쪽)

 

이 어구는 금강경의 한 부분이다. 그의 심리는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더 해석하자면 모든 삿된 생각을 버리고 맑은 마음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상태이며 결정적으로 자신이 불안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자신이 ‘연쇄살인범’이라는 불안을 가지고 있지 않은 평온한 상태이다. 키에르 케고르는 불안은 종교의 도움을 입음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이론을 적용하기 위해선 평온한 상태인 주인공에게서 불안의 요소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키에르 케고르는 불안은 마치 현기증 같은 것이라 서술했다. 현기증의 원인은 다양하게 찾을 수 있다. 머리가 원인일 수도 있고, 복통 때문에 일어날 수도 있다. 곧 불안이란 자신도 모르는 일의 현기증이므로 정신과 영혼의 육체를 정립하고자 할 때 발생한다고 했다. 서론에서 잠시 설명했듯이 불안은 무지한 상태에서 발생한다. 그는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이다. 살인이라는 큰 죄를 저지른 상태에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고 있지 않은 무지한 상태다. 이 무지한 상태에서 그는 불안을 느끼지만 인식하지 못한 상태이다. 하지만 그는 무의식의 상태인 불안에서 구원을 받고자 ‘불교’라는 종교를 선택했다. 키에르 케고르는 불안에서의 유일한 구원은 신앙을 통해서 할 수 있다고 했다. 불안은 모든 것에 대해 발생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모두 이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가능성에서 벗어나려면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키에르 케고르의 입장에서 신앙은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볼 수 있지만, 주인공의 신앙은 불교와 관련되어 있다. 기독교와 불교의 본질은 다르지만 두 신앙 모두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이 이론을 무시할 수 없다.

주인공은 금강경을 통해 평온한 상태를 강조하고 있는 모습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는 무의식의 불안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종교를 통해 구원받고자 하는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

반야경을 읽는 그의 모습에서 불안과 종교의 연관성을 또 찾을 수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키에르 케고르는 죄의 불안은 종교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죄를 진실로 제거할 수 있는 수단은 바로 신앙이라 말하며 종교를 강조했다. 그는 정말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불안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일까? 종교에 대한 얘기는 계속해서 등장하게 된다. 그가 정말로 불안을 느끼지 않는 상태라면 계속해서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론에 따르면 그는 확실한 불안을 가지고 있다. 그는 불안의 형태에서 벗어나고자 종교를 선택했으며, 기억을 점점 잃어가는 상황 속에서 반야심경을 손에 잡는다. 그리고 기억이 점점 없어지는 과정을 반야심경을 통해 역설한다. 모든 것이 없음을 말하며 괴로움이나 그 원인도 없음을 말하며, 불안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검사를 마치고 의사를 만났다. 표정이 밝지 않았다.

“해마가 위축돼 있습니다.”

의사는 뇌를 찍은 MRI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츠하이머가 분명합니다. 어느 단계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살인자의 기억법, 2013, 13쪽)

 

진단을 받은 이후 평온했던 그의 삶이 망가진다. 이 사건 이후로 그는 병의 불안이 생기게 된다. 그는 처음으로 기억을 잃는 심리를 핸드폰을 던짐으로 표출한다. 앞에서 그의 심리는 평온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딸인 은희를 통해 자신이 화를 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계속해서 기억이 끊기는 것을 기억해낸다. 결국 그는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 이후 계속된 기억의 부재는 그를 불안하게 한다.

기억의 부재는 곧 무지의 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무지의 상태는 곧 불안으로 이끌게 되면서, 주인공은 처음으로 정신적으로 불안을 느끼게 된다.

 

박주태라는 놈으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았다. 그런데 몇 번이나 내 눈에 띄었다. 우연이 라기엔 너무 잦다. …… 놈은 혹시 은희를 노리고 있는 것일까. (살인자의 기억법, 2013, 25쪽)

 

병의 불안을 생기게 된 그에게 새로운 불안이 등장한다. 바로 ‘박주태’다. 그의 차 트렁크에서 핏방울을 포착하고, 박주태를 살인자로 단정 짓는다. 이후 그는 자신의 주위를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박주태를 보고 살인자에 대한 불안을 처음 느낀다. 이후 그 불안은 은희의 안전으로까지 확장된다. 하지만 아직까진 박주태의 불안을 표면적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그는 자신이 사냥감이 되었다는 불안보다는 은희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더 강하게 한다. 박주태와 대결 구도를 느끼면서 은희의 생명에 대한 불안을 처음으로 느낀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은희가 살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사명감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은희 엄마의 죄책감인지 은희의 사랑인지는 알 수 없다.

초반부의 주인공은 죽음과 병에 불안이 등장했지만, 크게 심화되고 있지 않은 상태다. 자신이 과거에 은희 엄마에게 지은 죄를 생각하고, 은희를 지켜야 한다는 불안이 생기게 된다.

이는 키에르 케고르의 죄의식과 관련된 불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 주인공은 살인이라는 죄를 의식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은희 엄마를 죽였을 때 아무런 감정 없이 단순히 실망만 했다. 하지만 은희를 지키려는 그의 모습을 보았을 때 살인에 대한 죄의식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지 그는 죄의식을 자각하고 있지 않은 상태이다. 키에르 케고르는 이러한 상태를 죄의식이 없는 죄의 결과로서의 불안이라고 서술했다. 불안은 죄에 선행하는 심리 상태이고, 죄에 가까이할수록 불안을 불러일으킨다고 했다. 주인공이 죄를 저지른 만큼 죄로부터 가장 가까운 상태이며, 이런 죄의식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무지 속에서 불안이 발현하고 있으며, 불안의 형태로 은희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또 엉뚱한 곳에서 정신을 차렸다. 처음 와보는 동네다. …… 자꾸 기억을 잃고 어딘가를 헤매다 동네 사람들에게 에워싸인 상태에서 경찰에게 붙들린다.

반복된다 : 군중, 포위 그리고 경찰에 의한 연행(살인자의 기억법, 2013, 35쪽)

 

낯선 곳에서 헤매고 있는 자신을 경찰이 연행하고 있는 순간 속에서 그는 치매의 불안이 갑자기 증가하게 된다. 이 불안의 극대화는 자연스럽다. 건강한 정신이 육체를 낳는다는 말이 당연하듯 자신이 정신을 잃어버리고 있는 상태에서 느끼는 불안의 심리는 당연하다. 자신의 자유가 박탈당하고 있는 순간 속에서 주인공은 점점 불안의 심화를 느낀다.

 

 

2.2 불안의 심화

 

머리맡 반짇고리에 주사기를 숨겨두었다. 치사량의 펜토바르비탈나트륨도 준비해놨다. … 벽에 똥칠할 지경이 되면 사용할 생각이다. 너무 늦어서는 안 될 것이다. … 두렵다. 솔직히 좀 두렵다. 경을 읽자. (살인자의 기억법, 2013 , 47쪽)

 

증상이 더 심해지는 것을 느낀 그는 결국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때를 위한 수단을 준비해놓는다. 그의 고조되었던 불안은 곧 두려움으로 확장된다. 그가 직접 망각이 두렵다고 표현한 것은 처음이다. 그는 심리를 표출하지 않았던 처음과 달리 기억을 점점 잃어가면서 증상이 심해질 때마다 불안을 표출하게 된다. 그가 이렇게 가장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죄로 인한 불안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죄의 불안을 잊지 않았고, 끝이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그는 경을 읽는 행위를 통해 불안의 회피 수단으로 종교를 선택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죄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종교라고 했다. 그는 점점 잃어가는 기억의 불안으로부터 불교의 경을 읽는 것을 통해 해소하려 했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그는 죄를 청산하기 위해 종교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자신의 보험금을 은희에게 모두 돌리는 선택을 하면서 은희의 죄책감을 물질적으로 보상하려 했다.

앞에서 주인공은 죽음의 두려움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두렵다고 했다. 누구보다 죽음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그는 누구보다 고통스럽게 죽을 것이라 하면서 자신의 심리를 표출했다.

 

은희를 앉혀놓고 박주태에 대해 말했다. …… 은희야, 나는 그를 싫어하고 있는 게 아니라 너에게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 마음이 급해진 내 말은 어눌해진다. 언제나 그랬듯이 언어는 늘 행동보다 느리고 불확실하며 모호하다. 지금은 행동이 필요하다. (살인자의 기억법, 2013. 68쪽)

 

은희의 안전에 불안을 느끼게 된 그는 그녀에게 말한다. 하지만 은희는 믿지 않는다. 여기서 그는 기존에 존재하고 있던 병의 불안과 다른 불안의 심화를 느끼게 된다. 바로 은희의 불안이다.

박주태가 자신의 주위를 감시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 목표가 은희라는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은희와 함께 나타난 박주태를 보고 은희가 목표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박주태와의 대결이 확실해진 상황 속에서 그는 은희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과 함께 불안이 심화 된다.

불안의 심화를 겪은 그는 박주태와의 대결은 결국 혼자서 진행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박주태와의 대결 구도는 오로지 주인공 혼자 느낀다는 점이다. 박주태는 직접 주인공에게 어떤 위해나 압박을 가하지 않았다. 기억이 온전치 않은 주인공은 박주태로부터 늘 새로운 압박을 느끼게 되었고, 그것은 곧 주인공의 불안으로 연결된다. 불안 속에서 자신을 온전하게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던 매개체가 살인이라는 것을 떠올리고, 그를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그의 불안은 곧 살인으로 연결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그는 불안보다도 흥분을 느낀다. 하지만 그 흥분은 곧 큰 불안으로 바뀌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은희를 죽일뻔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이후로 그는 치매의 불안이 심화 되고 있던 상태에서 더 큰 불안을 가지게 된다. 그는 자신을 잊어버리기 전에 사명을 완료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박주태를 빨리 죽이고 싶다. 그런데 자꾸만 까무룩 정신줄을 놓는다. 마음이 급하다. 이러다 아무 일도 못 하는 존재가 돼버리는 건가. 우울하다.(살인자의 기억법, 2013, 101쪽)

 

박주태를 죽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늘 제자리걸음이다. 그는 직접 우울하다 표현할 정도로 무력한 상태다. 불안을 넘어선 상태다. 기억이 점점 없어지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본질적인 행위를 병 때문에 해내지 못한다. 끊임없는 불안의 끝엔 무력함만이 남게 된다.

그는 불안의 심화를 겪은 채 낮잠에서 깨보니 자신의 이마를 누르게 되는 박주태를 만나게 된다. 이 장면은 주인공의 심리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다. 여태껏 아무 행동을 하지 못하고 있던 주인공은 점점 큰 불안을 느꼈고 무력함까지 느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박주태를 자신을 억압하는 존재로 등장시킨다. 그가 꿈을 꾸고 있다는 가정도 무시할 수 없다. 그는 박주태의 존재로부터 큰 불안을 느꼈고, 이 순간 이후 그는 박주태와 동등한 입장에서의 대결 아닌 무력한 사냥감이 되어버린다.

 

수치심과 죄책감 : 수치는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것이다. 죄책감은 기준이 타인에게, 자기 바깥에 있다. …… 타인의 시선이나 단죄는 원래부터 두렵지 않았다. … 박주태가 은희를 죽이도록 내버려 둔다면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나를 용서할 수 없을 것이다. (살인자의 기억법, 2013, 105쪽)

 

이제껏 죄에 대해 직접 말한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이 부분을 보면 주인공은 죄에 대해 직접 서술한다. 주인공은 단죄에 대해 부끄럽지 않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불안의 심리에서 죄책감을 느꼈고 생명을 죽인 만큼 자신도 많은 생명을 살렸다고 변명한다. 이 언급은 변명으로 볼 수 있다. 단죄 자체에서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자신했으며, 자신은 은희만 지키면 된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그는 내면적으로는 자신을 부끄러워했으며, 죄에 얽매여 있었다. 은의 결과는 곧 자신의 성찰로 이어진다.

그는 스스로 과거나 미래는 신경 쓰지 않고 현재만 바라보고 살고 있다 자신했다.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그는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과거에 얽매여 살고 있었으며, 과거의 김병수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그 증거라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은희다. 그는 은희를 자신의 죄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거두었으며, 끝까지 지키려 했다. 이는 곧 과거에 얽매여 있는 행동이며 죄의식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이라 볼 수 있다.

 

2.3 불안의 종식

 

설령 붙잡힌다 해도 처벌받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가끔 생각한다. 인간사회로부터 정말 철저하게 버림받은 것 같은 기분(살인자의 기억법, 2013, 111쪽)

 

그가 살인하는 심리적 이유가 확실히 나오는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 그는 사회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불완전한 그가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수단은 바로 살인이었다. 살인을 계속해서 했던 이유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그에게 살인은 불완전한 자신을 완전한 사람답게 만들어 주는 도구였다. 하지만 처벌을 받지 않음은 모두에게 잊힌다는 뜻이고, 그것은 주인공에게 불안으로 다가왔다.

그는 후반부에 자신의 고찰을 많이 하게 된다. 그는 스스로 자신에게 과거도 미래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앞에서 설명했듯이 그 누구보다 과거에 휩싸여 사는 사람이 바로 그다. 병이 없었던 과거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했으며, 과거의 연을 잊지 못해 은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박주태를 죽이려 했다. 이는 계속된 성찰의 증거라 볼 수 있다. 이야기의 후반에서 그는 계속해서 보였던 불안의 심리를 보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디세우스에게는 애타게 그를 기다리는 아내가 있었다. 내 어두운 과거 속에서 나를 기다리는 이는 누구인가? 내 손에 죽은 자들, …… 아니면 내가 잊어버린 그 누군가일까(살인자의 기억법, 2013, 118쪽)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있다. 이 성찰 속에서 그는 죄책감을 계속해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내면은 이미 죄를 인정하고, 죽음 이후의 불안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다.

‘자신이 죽으면 누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라는 내면의 질문을 통해 ‘자신의 손에 죽은 자들과 자신이 잊어버린 누군가일까?’라는 대답하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과의 문답을 통해 죽음 뒤에 있어야 할 자리가 바로 자신의 손으로 죽인 이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는 곧 내면과의 합일을 마친 상태를 말한다. 이성적으로는 죄에 대해 인정하고 있지 않은 그였지만 이미 내면적으로는 모든 죄를 인정한 상태이고, 죽음 이후에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성찰 속에서도 은희의 부재는 그를 불안하게 만든다.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제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 (살인자의 기억법, 2013, p.119)’ 결국 마음을 다잡고 최후의 싸움을 위해 육체를 단련한다. 이 상태에서 그는 박주태와의 대결에서 느끼는 불안이 최고조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살인을 했던 흔적들이 있다. 그의 긴장과 모든 불안은 급격히 식게 된다. 아무런 감정 없이 흔적들을 정리한다. 그는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을 깨닫는다.

‘여자의 손이다(살인자의 기억법, 2013, p.125).’ 은희의 부재는 그를 불안에 떨게 했다. 그 불안의 최고조가 바로 이 장면이다. 은희의 부재와 함께 그녀의 죽음을 의심하게 된다. 박주태를 바로 의심하고 그를 신고한다.

‘박주태는 웃었다. 뜨끈한 것이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린다. 이게 뭘까(살인자의 기억법, 2013, p.131)’ 그의 집에 형사들이 찾아온다. 박주태를 발견한 그는 바지에 오줌을 싸게 된다. 그것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떨고 있는 그의 모습을 알 수 있다. 강인했던 그의 존재가 점점 무너지는 모습을 알 수 있다.

자신이 은희를 죽인 증거들이 집에서 나온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이 모두 다 가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엔 부정하고 의심한다. 그는 불안의 심리는 보이지 않은 채 조사에 임한다. 점점 불안 속에서 벗어나는 그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죄의 처벌 때문에 답답해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람답게 만들어 주었던 살인 기억의 손실에 더 답답함을 느낀다.

자신은 그녀를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은희는 죽었다. 자신의 손에 의해서 과거의 은희와 현재의 은희 모두 죽였다. 자신의 신념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을 제 손으로 죽인 것이다. 하지만 그는 어떠한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 그저 자신의 기억에 혼란스러울 뿐 죄책감이나 불안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눈을 뜨기가 어렵다. 지금이 몇 시인지, 아침인지 저녁인지도 도통 가늠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하는 말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다. …… 이 세계가 점점 작아진다. 우주의 먼지가 된다. (살인자의 기억법, 2013, 148쪽)

 

그는 아이처럼 퇴행의 길로 들어선다. 이제는 은희를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계속된 취조에 용서해달라고 한다. 그는 이제 불안의 상태에서 모든 것이 해방된다. 눈을 뜨기 어렵고 어딘지 분간도 못 한다. 모든 감정이 사라지면서 존재가 없어진다. 이제껏 느꼈던 모든 불안과 고통, 죄책감 등 아무런 심리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로 들어간다. 마지막엔 반야심경을 깨닫는다. 그의 심리는 이제 무의 존재로 돌아가게 되며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3. 악에 대한 불안 : 은희의 경우

 

 

그녀는 작품의 초기와 중반엔 주인공의 딸로 등장한다. 하지만 후반엔 주인공의 딸이 아닌 요양보호사가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은희는 과거에 주인공의 손에 죽은 인물이다. 작가는 ‘은희’라는 인물을 통해 독자들에게 끊임없는 혼란을 주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는 여러 사람이라는 것은 아닌 요양보호사인 은희에게서 딸인 은희의 모습이 보인다는 추측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녀는 주인공의 심리를 변화시켰으며, 그가 병에 걸린 이후 행동의 원인이 되었다.

작품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다 보니 은희의 심리는 직접 드러나지 않았다. 오로지 상황과 주인공과의 대화를 통해 유추가 가능할 뿐이다. 분석하기 위해선 사건 속에서의 은희의 상황과 생각의 재구성이 필요했다. 상황을 재구성한 뒤에 요양보호사인 은희가 딸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느꼈던 심리변화에 대해 분석했다.

 

”확실히 이상해.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게 분명해. 나 아빠가 화내는 것 처음 봐요.”(살인자의 기억법, 2013, 10쪽)

 

그는 은희를 딸로 여긴다. 은희도 환자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한 듯 ‘아빠’라고 부르는 모습이 등장한다. 그녀는 이전까지 불안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은희는 환자의 행동에서 이상함을 눈치채면서 은희는 평소 화를 내지 않던 환자가 화를 내고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환자에게서 불안을 느끼게 된다. 이 불안은 곧 의사의 진단을 통해 확실해진다. ‘옆에 앉아 있던 은희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없었다. (살인자의 기억법, 2013, p.13)’ 입을 꾹 다문 은희의 모습에서 그 심리가 잘 드러나 있다. ‘은희에게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를 살인자에 대해 거듭 상기시켰다(살인자의 기억법, 2013, p15).’ 환자는 살인자에 대해 병적으로 거듭 언급한다.

은희는 치매 판정을 받고, 점점 이상해지는 그를 보면서 ‘계속 환자를 맡아야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후 기억을 잃어버린 환자가 밖에서 길을 잃어버렸다는 전화를 자주 받게 된다. 그녀는 이런 이유로 점점 자신이 감당하기가 벅차다는 것을 느끼게 되며, 환자를 감당해야 하는 불안을 계속해서 느꼈을 것이다.

점점 광기에 싸여 다른 사람이 된 환자의 모습이 자주 보인다. 자신을 진짜 딸이라 여기는 모습이 강해지고 은희에게 집착하게 된다. 이 상황이 그녀에게 끊임없이 고통으로 다가왔고, 결국 환자에게까지 자신이 힘들다고 말한다. 이제껏 우리는 그녀가 매 순간 달라지는 환자의 모습에서 불안을 느끼면서 환자의 집착에서 불안을 느낀다는 사실을 추측했었다. 하지만 직접 자신의 심리를 말하는 부분을 보며 그녀가 진실로 불안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점점 불안이 최고조로 달리고 있는 순간에서 초반부는 마무리된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빠를 관리해야 되는 불안’, ‘아빠의 화를 내는 모습에서 발견한 폭력성에 대한 불안’ 그리고 ‘아빠의 살인자에 대한 병적인 집착’이 느껴지는 시기가 바로 딸인 은희가 느끼는 심리의 초반부다.

‘은희가 왜 도끼를 방에 두느냐고 묻기에 좀비 때문이라고 말했다(살인자의 기억법, 2013, p.46)’ 환자는 좀비 때문에 도끼를 놔둔다고 말했다. 정신이 이상한 상태도 아니고, 태연하게 말하는 환자의 모습에서 소름을 느낄 것이다. 도끼의 모습을 보며 안전의 불안을 느꼈다. ‘은희는 두려워하고 있다(살인자의 기억법, 2013, p.49)’ 주인공의 생각에서 알 수 있듯이 은희의 위험에 대한 불안은 이후 두려움으로 바뀐다. 그녀는 환자의 치매로부터 두려움을 표출할 정도로 불안이 심화 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초반에 느꼈던 불안들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아빠만 돌봐야 한다는 불안과 아빠에 대한 불안들이 합쳐져서 두려움으로까지 확장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중에 어떻게 될지 그게 더 무서워. 치매에 걸리면 인격도 달라진대. 벌써 그런 것 같기도 해(살인자의 기억법, 2013, p.53)’ 그녀는 친구와 문자를 통해 자신의 힘든 상황을 알린다. 인격이 달라진 것에 대한 확실한 불안이 등장한다. 이 문자의 의미는 이제껏 상황을 통해 유추했던 은희의 심리의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녀는 확실히 달라진 환자의 인격에서 불안을 느끼고 있다.

이런 불안한 상황 속에서도 빛이 보였다. 환자의 집에서 보험계약서를 발견했다. 환자가 사망했을 때 거액의 사망보험금이 김은희의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그녀지만 이내 평소 얘기했던 딸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겹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정신이 이상하다 못해 나를 정말로 딸로 여기는 걸까, 혹은 과거에 자신의 딸을 위해 남겨놓았던 보험이었을까 하는 생각에 휩싸이며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은희가 알기론 이 환자는 다른 가족들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환자에게서 불안을 느꼈다. 자신이 오로지 감당해야 할 환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거액의 보험금이 있을지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보험금을 갖기엔 보호사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 들었지만, 비밀로 하기엔 금액은 너무 컸을 것이다.

결국 일을 바로잡지 않고 거액의 사망보험금이 모두 다 자신의 앞으로 오게끔 내버려 두었다. 이후 보험금의 수령이 바뀌었다는 언급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은희는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 사실을 알았음에도 방관했을 것이다. 하지만 환자가 정신을 제대로 차리는 날이면 자신의 죄는 들통나게 된다.

이 죄책감은 결국 그녀의 불안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죄와 불안은 연관성이 있다. 이런 관점에서 그녀가 불안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고, 그 심리가 그녀를 옥죄였을 것이다.

이후 그녀는 죄의 벌을 받게 된다. ‘은희를 앉혀놓고 박주태에 대해 말했다(살인자의 기억법, 2013, p.67)’ 병에 걸린 환자가 그녀를 붙잡으며 집착하기 시작했다. 있지도 않은 남자친구의 존재를 말하며 그가 살인자라고 한다. ‘은희의 방에서 소리 죽인 울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살인자의 기억법, 2013, p.68)’ 그녀는 여기서 초반에 느꼈던 환자의 집착과 광기의 불안을 또 느끼게 된다. 불안의 형태가 눈물로 바뀌게 되며 심화 되고 있는 모습을 알 수 있다.

환자는 은희의 안전에 대해 병적으로 집착했다. 살인자에 대한 집착도 대단했다. 이런 모습들을 보며, 자신이 저지른 죄 때문에 이런 상황들이 벌어지는 것인가 하는 불안에 휩싸였을 것이다. 주인공의 광적인 집착은 은희를 불안의 길로 인도한다. 그리고 사기 같은 행각이 언제 발각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늘 휩싸인다.

 

출근 준비를 하는 은희의 목이 벌겋다. 목을 손으로 졸렸을 때 나타나는 흔적이다. …… 은희는 내가 들어와 목을 졸랐다고 말한다. … “꼭 미친 사람 같았어. 나 죽을 뻔했다고” (살인자의 기억법, 2013, 74쪽)

 

환자는 은희를 목 졸라 죽일뻔했다. 이 사건 이후로 은희의 불안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은희는 자신의 죄 때문에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을 느낄 것이다. 도끼의 존재를 보았을 때는 위협이었지만 지금은 현실이 되어버렸다. 자신의 불안이 점점 심화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정신이 미쳐버린 환자는 자신의 생명을 위협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그만두고 도망치고 싶었지만, 보험금 때문에 보호사 일을 그만두지 못했을 것이다.

 

요양원 홍보 리플릿을 꺼내온다. …… “아빠, 나 힘들어. 그리고 아빠를 위해서도 여기 가야 돼. 나 없을 때 뭔일이라도 나면 어떡해? …… 나는 그러겠다고 한다.(살인자의 기억법, 2013, 76쪽)

 

불안의 최고조를 느끼고 있는 그녀는 결국 환자에게 요양원을 권유한다. 생명의 위협까지 받은 상황에서 그녀는 환자에게 애원하게 된다. 요양원에 가기로 결정된 상태에서 그녀는 불안함과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환자의 결정이 번복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그리고 만약 요양원이 싫다면 계속해서 환자를 돌봐야 하는 건가 하는 불안에 휩싸인다. 실제로 환자는 요양원을 기억 하지 못했고 그 환자에게서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 시기는 불안이 잠시 멈추는 시기다. 환자가 요양원에 들어간다는 희망과 함께 사건이 일어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환자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을 것이며 보험금을 받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할 것이다. 이 상태에서 그녀는 불안에서 잠시 해방된 상태다. 이후 최대의 사건을 대비한 폭풍 전 상황이라 볼 수 있다.

은희의 일자리에 형사가 찾아왔다. 자신도 모르는 엄마에 대한 존재를 물어본다. 환자에게서 들었던 엄마의 얘기와 형사의 말이 다르다. 평소 환자가 살인자에 대한 집착과 보여줬던 폭력성이 생각날 것이다. 그 생각도 잠시 잊고 있었던 죄의 불안이 다시 떠올랐을 것이다. 자신의 죄가 발각되었을까 라는 생각으로 인해 그녀의 불안은 최고조에 다다른다. 그녀는 결국 환자를 찾아가 형사의 방문을 얘기한다. 이것은 그녀의 도박이라 볼 수 있다. 자신의 정체를 이제 알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도 불구하고 환자에게 가서 형사의 방문을 그녀가 직접 얘기한 이유는 견디지 못하는 불안감 때문일 것이다. 만약 환자가 기억을 다 하게 되면 자신의 죄에 대해 용서받길 원했다. 하지만 환자는 기억하지 못했고, 그녀는 끝까지 보험금에 대해 묵인하게 된다. 하지만 불안의 최고조는 어이없게 식게 된다.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죄 때문에 불안해할 필요도, 생명 위협의 불안에서도, 환자의 집착 불안도 없는 상태다. 죽은 자는 아무 심리를 느끼지 못한다. 그녀는 죽음으로 끝을 맺게 된다.

 

4. 죄를 묻지 못하는 자의 불안 : 박주태의 경우

 

마지막으로 살펴볼 인물은 박주태다. 은희가 주인공 심리변화의 원인이라면, 그는 주인공의 심리를 더욱 심화시켜 주는 인물이다. 그는 살인을 끊었던 주인공에게 살인의 목적의식을 가져다주었으며, 그에게 끊임없는 불안을 선사한 인물이다.

박주태는 죄를 심판하기 위한 존재다. 연쇄살인의 굴레를 끊으려 주인공 주위를 계속 돌아다녔으며, 경찰대 학생들을 데리고 직접 주인공에게 찾아가기까지 했다. 주인공이 안형사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바로 박주태다. 주인공의 망상 속에서 은희의 남자친구, 살인자로 등장한다. 하지만 그의 본질은 경찰이다. 바로 죄를 심판하기 위한 존재다.

박주태는 죄를 심판해야 한다는 자신의 사명에서 생기는 불안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이 인물은 작품에서 은희보다도 적은 심리 상태를 보여줬다. 그래서 오로지 상황을 통해서만 심리변화를 분석해야 했다. 큰 사건을 중심으로 박주태의 심리를 유추해 분석할 예정이다.

 

가벼운 접촉사고가 발단이었다. …… 그냥 가세요, 어르신. 원래 찌그러져 있던 거예요. 괜찮습니다. …… 나는 내 연락처를 건넸다. 그는 받지 않으려 했다. (살인자의 기억법, 2013, 20쪽)

 

그는 과거에 있었던 연쇄살인을 조사하던 중 한 동네에 유력한 용의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동네를 조사하고 있었다. 처음 그는 평온한 상태의 심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는 아마도 범죄 상황을 재연하기 위해 차를 빌려 트렁크에 범죄 현장에 쓰였던 물품들을 담고 이동하고 있을 것이다. 이후 노인과 가벼운 접촉사고가 생긴다. 그는 노인과 대화를 하면서 알 수 없는 불안을 느낀다. ‘뱀의 눈이었다. 차갑고 냉혹했다. 그때 우리 둘은 서로를 알아보았다. (살인자의 기억법, 2013, p.21)’ 노인이 자신을 살펴보는 눈빛과 언행을 이상하게 여겼고, 그에게서 무언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노인을 조사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데 몇 번이나 내 눈에 띄었다. 우연이라기엔 너무 잦다. (살인자의 기억법, 2013, p.25)’

박주태는 본격적으로 주인공을 조사하기로 마음먹고, 주인공의 주위를 배회한다. 곧 그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불안을 느끼게 된다. 노인은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말을 걸기 위해 다가오는 노인을 피해 계속 조사를 진행한다. 하지만 물증은 나오지 않는다. 심증만 있는 채 주인공을 조사하는 것에 대한 불안을 느낄 것이다. 자신의 감이 틀렸다는 불안과 범인을 꼭 잡아야 하는 불안을 처음 느끼게 된다.

‘만나는 사람이 있어요(살인자의 기억법, 2013, p.35)’ 그는 결국 은희를 통해 주인공을 조사한다. 은희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노인이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만남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처음 느꼈던 불안은 곧 심화 된다. 별다른 수확 없이 주인공의 주위만 돌아다닌 그는 점점 주인공이 범인이라는 확신이 없어질 것이다. 불안이 가속화된 그는 은희를 통해 노인과 만남을 이루어낸다. 하지만 이 만남도 별다른 소득 없이 끝나게 된다. 그의 병은 확실하며,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시내에 나가 CCTV가 없는 곳을 신중하게 고른 후 공중전화로 112에 신고를 했다. …… 그자의 차를 조사해보시오. 거기서 피를 봤으니까.” (살인자의 기억법, 2013, 69쪽)

 

이 사건 이후로 그는 노인이 연쇄살인범이라는 심증적 확신을 얻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가 기억이 났는지 그때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해 신고했기 때문이다. 가벼운 통과의례로 풀려 났지만, 노인에 대한 새로운 불안이 증가하게 된다. 자신을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살인범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노인의 존재를 새롭게 알게 되면서 점점 불안을 느낄 것이다.

 

집에 누워 있는데 사람들이 저벅저벅 마당으로 들어선다. 제복을 입은 다섯 명의 젊은이들. 처음엔 경찰이라고 생각했다. …… 새로운 인물 하나가 등장했다. (살인자의 기억법, 2013, 79쪽)

 

불안의 심화를 겪은 그는 직접 행동하기로 한다. 먼저 학생들을 보낸 뒤 노인의 정신상태를 확인했다. 이후 정신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불안을 감추며 주인공을 떠본다. 노인은 옛날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이미 조사했던 그때 당시 상황에 대해 말한다. 자신이 조사했던 상황과 일치함을 느끼며, 계속해서 질문하지만 별다른 소득을 느끼지 못한다. ‘내 나이를 아시오? 그가 움찔하는 것을 느껴졌다(살인자의 기억법, 2013, p.84).’ 마지막에 실수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해도 노인은 날카로운 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여기서 그의 불안은 더욱 심화를 느꼈다. 자신의 정체에 대한 불안, 그리고 범인을 검거할 증거를 잡지 못함의 불안, 죄를 심판하는 자가 느끼는 불안의 심화를 느낄 것이다. ‘여성의 사체 한 구가 더 발견됐다(살인자의 기억법, 2013, p.110).’ 이 사건 이후로 그는 불안의 최고조를 찍었다. 그가 여태껏 관찰한 노인이 범인이라는 증거를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계속된 살인사건은 그에게 최고의 불안을 선사해 주었다. 그는 이제 좌절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사복을 입은 형사들이 대문을 두드렸다. …… 저놈을 잡으시오 박주태는 웃었다.

(살인자의 기억법, 2013, 131쪽)

 

그는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신고했다. 노인은 나를 여전히 범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허탈감에 웃음이 나왔다. 모든 것을 걸고 조사했지만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정신을 아예 놔버린 건지 박주태를 보고 오줌을 쌌다. 그는 노인의 모습을 보고 당황했지만, 그 당황은 다시 놀라움으로 바뀌게 된다. 시체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의 모든 불안이 확신에 차게 되며, 이제 죄를 지은 존재를 심판할 수 있다는 확신하게 된다.

그는 결국 체포되었지만, 병 때문에 모든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과거에 저질렀던 살인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을 받을 수 없다. 그는 여기서 불안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손으로 체포를 했지만 늦어버렸다. 많은 피해자가 나왔고, 그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우리가 모르는 많은 사람이 살해당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찾을 수 없었다. 또한 과거의 죄도 처벌할 수 없었다. 그의 불안은 이제 좌절로 바뀌게 되었을 것이다.

 

처음 보는 남자가 내 앞에 앉아 말한다. 험상궂은 얼굴을 하고 있어 나는 그가 조금 무섭다. 그는 나를 추궁한다.

“괜히 치매에 걸린 척하는 것 아닙니까? 처벌을 피하려고.”

“나는 치매에 걸리지 않았소. 좀 깜빡깜빡할 뿐이지.” ……

“김은희 씨는 왜 죽였습니까? 동기가 뭡니까?”

“내가요? 언제요? 누굴요?” (살인자의 기억법, 2013, 147쪽)

 

살인자인 이상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최소 피해자들에게 미안해하고 있어야 했다. 취조를 하기 전까지 그는 이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노인이 죄의 두려움을 가지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노인은 아무 생각과 감정이 없었다. 자신의 죄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자신이 오랫동안 조사했고, 체포의 순간까지 함께 했지만, 결정적으로 자신이 잡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최소한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받게 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노인의 태도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서 그의 불안은 곧 큰 좌절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이후 악마 같은 노인은 결국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 상태로 눈을 감게 되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끊임없는 고통 속에 빠져 살고 있다. 그도 자신의 손으로 악을 처단해 불안의 늪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다. 이 속에서 그는 큰 죄의식을 가졌을 것이다. 불안의 고통 속에서 박주태는 사건을 종결한다.

 

5. 죄의식 없는 죄인과 죄를 묻지 못한 자의 죄의식, 혹은 불안 사회

 

세 인물 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 주인공은 죄를 지은 존재다. 죄의 불안과 함께 인간이 정해놓은 사회적인 체벌이 아닌 시간의 벌을 받았다. 시간의 벌은 참혹했다. 그를 점점 불안에 떨게 하면서 그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기억과 시간을 모두 앗아갔다. 이후 모든 것들이 무로 돌아가며, 우주에서 가장 작은 먼지가 된다.

은희는 악을 두려워한 존재다. 요양보호사인 은희가 주인공 딸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두 인물 어느 한쪽이 진짜라 단정 짓긴 힘들다. 하지만 마지막은 살인의 피해자 된 사실은 확실하다. 은희는 모든 사실을 알고도 침묵했지만, 악을 두려워했다. 병에 걸린 주인공에게 늘 생명의 불안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수수께끼만 쥐여준 채로 허무하게 은희를 죽였다. 불안한 사회의 전형적인 피해자의 모습을 하는 존재가 바로 은희다. 작가는 은희의 존재를 통해 불안 사회 속의 소시민인 성격을 지닌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했다.

마지막 박주태는 죄를 처벌하려는 자다. 악을 처단하기 위해 주인공의 뒤를 쫓았으며, 결국에 체포 했지만 인간사회의 처벌을 받게 할 순 없었다. 그는 죄를 결국 묻지 못했으며 가장 큰 좌절을 느낀 인물이다.

이야기의 승리자는 결국 아무도 없다. 죄를 지은 자는 결국 무의 존재로 돌아갔으며, 악을 두려워하던 자는 죽음으로 사라졌다. 이 모든 것을 밝히고, 사회의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존재는 큰 좌절을 느꼈다. 죄를 지은 자를 끝내 잡았지만, 죄를 묻지 못했기 때문이다. 작가는 인간으로 느낄 수 있는 불안의 심리나 공포 등 감정들을 인물에게 삽입해 이야기를 급격하게 진행 시켰다. 하지만 긴박한 레이스의 끝은 허무했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불안의 끝은 곧 ‘무(無)’라는 결론을 세우면서 끝을 맺는다.

 

 

참고문헌

 

1. 기본자료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문학동네, 2013.

 

2. 단행본

키에르 케고르, 『불안의 개념/죽음에 이르는 병』, 동서문화사 2007.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오우진

 
 

관리자 press@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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