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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회 황룡학술문학상 문학부문 우수상 수상작 (소설)

기사승인 [0호] 2021.02.23  16: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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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장

정장

 

 

메일을 열어본 진우는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미친 듯이 웃고 싶은 것을 참고 있다가, 이내 소리를 지르며 웃기 시작했다. 그런데 웃는 얼굴이 영 어색했다. 웃을 일이 없는 것인지, 태어날 때부터 웃음기가 없었던 것인지는 자신도 잘 모른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평소에 웃음이 없기로 유명했다. 사실 진정한 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두 명밖에 없기에 유명하다고 할 수도 없지만…….

메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한국장학재단 8기 서포터즈에 합격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진우는 달뜬 기분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할아버지한테 자랑할까, 잘된 김에 고양이 밥이라도 사줄까, 아니, 아니야. 이건 아니지, 내가 당장 무슨 돈이 있다고……, 우선 친구 단톡방에 메일을 캡처해서 올리자, 등등 상념에 사로잡혔다. 그러다 서랍 안에서 지폐 한 장을 발견한 것처럼 번뜩이며, 무언가 반갑게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정장을 사는 것이었다. 매일 청바지와 회색 트레이닝 바지만 교대로 돌려가며 입던 진우는, 나름 이 옷들에 만족하면서도 항상 깔끔한 옷 한 벌은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의미 있는 이력이 될법하다고 생각되는 서포터즈에 합격했으니 은연중 여차여차 정장 한 벌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불쑥 났다. 다만 고급 정장은 살 수 없고, 인터넷에서 저렴한 옷을 고르자는 결론에 닿았다. 비싼 건 도무지 도리가 없었다.

 

당장 시급한 것은 돈이었다. 진우는 그것을 어디서든 구해야 했다. 하지만 돈은 가만히 앉아 머리를 굴린다고 해서 대충 굴러 들어오는 게 아니다. 학업 때문에 임금노동마저 하고 있지 않던 진우는, 결국 중학교 동창 세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세철이는 두 명뿐인 진우의 친구 중 한 명이었다. 진우가 생각하기에 세철이는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했기 때문에 나름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 정확히는 햄버거 가게에서 일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자신이 돈을 잘 안 써서였지만, 진우는 세철이라면 선뜻 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친구 좋다는 말이 다 어떤 뜻이겠는가.

그 추측이 맞았을까, 세철이는 구두쇠 특유의 싱거운 톤으로 전화를 받고 나서 오랜만에 연락 온 친구의 합격 소식을 듣고 듬뿍 축하해주었다. “야, 이 새끼 축하한다.” 하지만 이 말이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는 것인지 의례적으로 한 말인지 진우는 파악하기 힘들었다. 결정적으로 달갑지 않았던 것은 그다음 말 때문이었다. “근데 정장은 뭐 한다고 사. 그리고 나 돈 없어.” 진우는 순간적으로 헷갈렸다. 정장을 무엇 하러 사냐는 것과 세철이가 나한테 빌려줄 돈이 없다는 것 둘 중에 어떤 의미나 의지가 더 강한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 세철이는 명확하지 않게 덧붙였다. “야 근데 진우야, 그건 그렇고, 내가 너한테 한국장학재단을 소개시켜줄게. 이미 알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진우는 세철이의 말을 듣고 무슨 빚이냐며 일축했다. 그리고 말했다.

“야 내가 한국장학재단 서포터즈가 됐는데, 거기서 빚을 지라고?”

“아 맞다, 그렇네. 야, 그럼 잘 됐잖아. 너 말대로 니 회사 아니냐, 거기가. 거기서 일하게 된 김에 그냥 빚져. 그럼 나중에 못 갚아도 독촉은 좀 덜할 거 아냐.”

진우는 묘하게 설득되었다. “아, 그럼 생각해볼게.” 진우는 세철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 후에 전화를 끊었다. 그러곤 옷장을 한 번 열어보았다. 뭔가 텅 빈 느낌을 감출 수가 없었다. 바지 세 개와 제각각 접힌 티셔츠는 진우를 우울하게 했다. 차라리 아예 없는 게 나을 거 같다는 생각도 했다. 옷장 문을 닫았는데, 오른쪽에 있는 창문 옆 틀에 조그만 거미 한 마리가 기어 올라가고 있었다.

“거미야 네가 거기 있으면 내가 뭐가 되냐.”

진우는 이렇게 말한 후에 조심스레 휴지 한 장을 뜯었다. 거미가 천천히 휴지에 붙도록 유도했다. 미안하다 거미야, 진우는 거미를 바라봤다. 그리곤 그 채로 휴지를 창문 밖으로 집어 던졌다. 그 행위는 거미를 죽이지 않고도 같이 살지 않을 수 있는, 나름 유일한 방법이었다. 거미가 다른 집에 들어갈 수도, 어쩌면 다시 벽을 타고 4층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들어올 수도 있었지만 그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 것까지 생각하는 건 너무 머리 아픈 일이었다. 창밖으로 휴지를 던질 때 거미에게 묘한 동정심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함께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씁쓸한 감정이 들더라도 일 처리는 깔끔해야 했다. 이렇듯 진우는 평소 극단적인 선택은 피할 줄 알고 있었다. 남들과 대화를 할 때도 적당히 분노를 표출했지만, 판을 깨는 법은 결코 없었다. 험준한 세상에 살아가려면 모름지기 이 정도의 여유와 눈치는 있어야 한다. 그것이 진우가 살면서 터득한 지론이었다.

 

 

*

 

 

하루 내내 돈 구할 궁리를 할 것만 같던 진우는 자신도 모르게 학자금 대출을 받아버리고 말았다. 신청 절차가 까다롭긴 했지만, 정장을 생각하니 그 단계는 복잡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한 학기에 최대 150만 원까지 받을 수 있으며, 총 네 차례 나누어서 대출이 가능했다. 처음 한 번이 어렵지, 그다음은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우는 20만 원을 먼저 대출했다. 핸드폰으로 긴 메시지 두 통이 왔다. 대출이 완료되었다는 알림이었다. 아버지가 집에서 나가실 때 너는 빚지는 것과 노름은 절대 손대지 마라,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내 찝찝함은 사라졌다. 현대 사회에서 경제생활은 다 빚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돈은 순환하는 것이다, 진우는 교양 시간에 교수님이 해준 말씀까지 서둘러 기억해냈다. 덕분에 빚 20만 원은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진우는 담배를 한 대 물고 유라에게 밥을 줬다.

“맨날 먹어 질리겠지만 돈이 없으니 당분간은 그래도 먹어 유라야.”

유라가 끼잉, 하고 소리를 냈다. 유라는 대학교 2학년 때 진우가 길에서 주워온 고양이 이름이다. 유라는 처음 데려올 때부터 지금까지, 이틀에 한 번씩은 밥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럴 때면 진우는 자기가 유라를 기르는 것인지 유라가 자신을 기르는 것인지 헷갈리곤 했다.

진우는 인터넷에 들어가 정장을 찾기 시작했다. 자연스레 특가나, 세일 쪽으로 눈이 갔다. 잘 찾아보면 저렴한 옷 중에서도 상당한 멋을 발휘할 수 있는 옷이 있다는 걸 진우는 알고 있었다. 더불어 자신의 안목을 믿고 있었고, 그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진우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정장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체크무늬는 너무 튄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클래식한 무지 정장을 골랐다. 네이비나 은색은 자주 입을 거 같지도 않고, 신경 써 차려입은 느낌을 줄 거 같아 무난한 검정색으로 결정했다. 주문을 확인한 후 ‘나의 구매내역’란에 들어가 입금이 완료된 것을 확인했다. 설레는 행복감이 몰려왔다. 그렇게도 돈 씀씀이가 박하던 그였지만, 그 순간만큼은 멋진 정장을 사기 위해 진 빚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 ‘그렇다. 돈은 돌고 돈다. 순환하는 것이 돈의 이치다. 내가 진 빚은 갚으면 그만이다.’ 진우는 3주 뒤에 있을 서포터즈 입단식 행사와 말쑥하게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고선 벌써 두근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 켜에 빚을 졌다는 찝찝함은 완벽히 가시지 않고 천천히 다시 떠올랐다. 진우는 자신의 미래에 성가신 일 하나가 추가됐다고 생각했다.

 

 

*

 

 

다음 날, 진우는 눈을 뜨자마자 항상 하던 대로 핸드폰을 확인했다. 세철이에게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이제 와 돈이라도 빌려주려고 그러나, 하지만 이미 늦었다 세철아, 이미 샀거든’이라는 말을 음을 붙여 흥얼거리며 진우는 세철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세철이가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진우는 다시 주문내역을 확인했다. 어제는 ‘입금 완료’였는데, 오늘은 ‘배송 중’으로 바뀌어 있었다. 좌측 상단에는 ‘평균 2~3일 내로 배송됨’이라는 문구가 작게 적혀 있었다. 어제 오전에 주문했고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내일이면 오겠지, 머릿속으로 서둘러 계산을 마치니, 더욱 들뜨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세철이한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응, 세철. 새벽에 전화했었네.”

“야 진우야.”

“어.”

“너 그 얘기 들었냐.”

“뭔 얘기?”

“미나네 아빠. 돌아가셨대…….”

“아…….”

진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사실 말을 잇지 못한 것은 충격과 슬픔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왠지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 여자친구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어떻게 해야지, 그리고 왜 이 얘기를 하필 세철이를 통해 전해 들어야 하지, 라는 생각이 진우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보다 더 찝찝했던 것은, 왠지 모르게 부고 소식을 들은 나의 반응을 세철이가 미나에게 전해줄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잡념이 수 초 사이에 스쳐 갔다.

“중앙병원 장례식장이래. 특실.”

“아 그래.”

“어제 새벽에 돌아가셨다더라, 너 그래도 가봐야 하지 않냐?”

그치. 가긴 가야지, 진우는 얼버무리고 둘러대며 말을 마무리 지었다. 서둘러 전화를 끊고 몇 초 뒤, 진우는 자신에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버지 때문에 슬퍼할 전 여자친구 생각이 아니라, 내일 오게 될 정장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안 그래도 경조사 때 입을 옷이 없었는데 내일 오는 정장을 입고 가면 딱 맞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진우는 어떤 티셔츠를 받쳐 입을지도 고민하고 있었다. 윤리는 뒷전인 자신의 감정을 집어 물을 새도 없이,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하는 회고 또한 당연히 없이, 진우는 발인날짜와 차 시간 등을 머리로 굴리며 내일 갈 계획을 서둘러 짜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때 불현듯 무언가 머릿속을 스쳤다. ‘만약 내일 정장이 안 오면 어떡하지?’ 진우는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말고는 장례식장에 간 기억이 없다. 그때는 장례식장에서 옷을 줬기 때문에 따로 의복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심지어 3년간 교제했던 미나와 다시 재회하는 건 2년 만이었기에, 대충 갈 수는 없었다. ‘며칠 후면 정장이 집 앞으로 온다. 그래,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갈 수는 없지.’ 그때부터 진우는 깔끔하게 차려입고 가서 미나를 위로해줘야겠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정장은 내일 도착 예정이었다. 못해도 내일 받아야만 대전 터미널을 가 익산 터미널로 갈 수 있다. 그래야 저녁에 도착해 옷을 입고 시간 맞춰 조문을 갈 수 있을 것이다. 진우는 나름 멋진 계획이 하나 세워졌다고 생각했다.

 

 

*

 

 

진우는 오전 11시에 일어났다. 새벽 5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잠들었기 때문에 피곤함은 가시지 않고 따가운 눈은 쉽게 떠지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비비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금세 정신이 차려졌다. 갑자기 초조해졌기 때문이다. 택배를 받아본 지가 1년 가까이 돼가던 터라 가물가물해지긴 했어도 원래 이맘때쯤에 몇 시 도착 예정이라는 안내 연락이 와야 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게 없었다. 다급해진 마음에 침대에 그대로 누운 채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가 확인을 했다. 여전히 배송 중이라는 표시만 보였다. 덜컥 불안한 예감이 들었다. 사이트 약관 안내를 훑어 읽고, 다시 배송내역을 들어가는 것을 두어 차례 반복했다. 곰곰 따져볼 것 없이 이미 발송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물류였다. 진우는 운송장 번호를 확인했다. 번호를 검색해 상품 위치를 추적해보니 ‘충북 진천 집하장’이라고 떴다. 차가 없는 진우는 직접 집하장까지 물품을 가지러 갈까 하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말만 진천이지, 집하장은 진천과 상당히 먼 곳에 있었다. 속절없이 물류 업체에서 택배가 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사님이 올 때까지 잠자코 기다릴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차 시간도 있고, 집에 있는 옷과 매치도 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전화를 걸기로 했다. 전화번호는 생각보다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다급한 진우는 당장에, 그런 것을 꽁꽁 감춰두는 택배회사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진우는 먼저 화가 나 옷을 구매한 쇼핑몰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 연결음에서는 아이유의 「싫은날」이 흘러나왔다. 진우는 자신도 좋아하는 노래라 그런지 정장은 잠시 잊고 노래에 심취해 있다가, 안내원 음성으로 넘어간 후에야 점차 상황이 예사롭지 않게 흘러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우는 전화를 한 번 더 걸었다. 그러나 또 한 번 노래를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진우는 웃음이 났다. 이미 불안한 예감을 지울 수 없으나, 정말 어쩌면 불길한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부정적인 판단이 내려졌을 때야 띌 수 있는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이 상황에서는 거의 포기 상태로 대안을 찾아야 했다. 하지만 진우는 별다른 묘책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현재 진우가 처한 상황과 그것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는, 어쨌거나 담배 연기가 모기장을 통과하듯 사면팔방으로 흩어져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진우는 결국 택배회사 사이트라도 들어가 항의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인터넷에 택배회사를 검색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문의를 하려던 진우는 드래그하다가 깜짝 놀랄만한 것을 발견했다. 바로 대한택배의 파업 공지였다. 정확히는 산별 운수노조의 파업 기사를 따온 것이었는데, 그 노조에 가입된 택배회사 중 대한택배라는 이름이 제일 윗면에 쓰여 있었다. 진우는 한 번 더 웃었다. 어쨌거나 원인을 찾아내게 되어 잠시간 기쁨을 맛보았다. 그리고는 이 상황이 과연 불가항력적인가를 대충 판단해보았다. 쉽사리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정장을 본 이상, 이미 구매한 지금,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장례식장에 갈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차려입은 자신의 모습을 싹 떨쳐내는 건 힘들었다. 이것이 오히려 불가항력적이라면 불가항력적인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진우는 정신을 차리고 따져보았다. 몇 시간 안으로 집하장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옷을 찾아내는 건 무리였다. 몇 분을 고민하다가 결국 천안 터미널 백화점에 가서 새 정장을 구매하기로 했다. 이미 발송된 정장은 반품시키기로 했다. 진천에서 익산까지 가려면 대전을 거치는 것이 가장 빠르지만, 진우 기억에서 대전 터미널 근처에는 정장을 살 만한 곳이 없었다. 그래서 터미널과 백화점이 붙어있는 천안을 거쳐서 장례식장까지 가기로 했다. 어차피 시간은 그리 차이가 나지 않았다. ‘적어도 저녁 8시까지 장례식장에 가야 하니까, 5시 안에는 천안에 도착해야 한다, 그래야 제 시각에 조문하기 수월하다, 옷을 고르는 시간까지 감안 하면 당장 두 시간 뒤에는 출발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대충 시간을 잰 후에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그리고 학자금 대출을 누르고 실행 버튼을 클릭했다. 대출 잔여 금액은 130만 원이었다. 진우는 멈칫했다. 사실 원하는 액수를 입력하고 마우스만 몇 번 누르면 될 일이었지만, 5분 이상을 망설였다. 그리고 고민한 끝에 40이라는 숫자를 입력했다. 또 한 번 핸드폰으로 문자 두 통이 왔다. 이번에는 문자를 읽지 않았다. 알림음을 듣고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화장실로 갔다. 진우는 노래를 흥얼대며 빠르고 꼼꼼하게 몸을 씻었다. 물소리와 함께 빚에 대한 생각은 순식간에 씻겨나갔다. 진우는 밀폐된 공간에서 자기 주위에 앉을 버스 승객들과 혹여나 코가 예민할 수 있을 백화점 매장 점원들을 고려해서 향수까지 미리 뿌려 두는 섬세함까지 갖춘 자신을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쩐지 이 모든 것들이 다행히도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만 같아 흐뭇했다. 시간 맞춰 버스에 탄 진우는 천안으로 가는 내내 정장 생각만을 했다. 가는 중간에 창밖에 머리에 띠를 두른 한 무리의 사람들이 교차로에서 무슨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무의식적으로 진우는 그들이 원래 거기에 있었다는 것처럼 느껴져 신기해 웃음이 나왔다. 그러곤 다시 정장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조금 더 지나 사거리에서 비슷한 무리가 또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번에는 아무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진우의 머릿속엔 오로지 정장뿐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기존에 구매한 정장과 흡사하지만, 더 멋진 것으로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기분이 좋아졌다. 기구한 자신의 상황에 헛웃음이 나와도, 나름 멋지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

 

 

사람이 붐비는 천안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진우는 카페 사이를 지나 백화점으로 직행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말 것도 없었다. 고가 브랜드는 알아서 지나치자고 이미 버스 안에서 마음먹었다. 진우는 피할 것은 피하며 멋진 마네킹을 찾아다녔다. 그러다 한 매장 앞에 멈춰 섰다. 짙은 쥐색의 정장을 입고 있는 마네킹이 보였다. 자연스레 그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한 진우는 이거다, 생각했지만 그런 모습을 점원에게 보여주는 것은 또 탐탁지 않아서인지 속으로 드디어 찾았다는 반가움을 눌러 참으며 정장의 팔 옷깃만을 슬쩍슬쩍 건드려 보았다. 예상대로 점원이 진우에게로 다가왔다.

“정장 찾으세요?”

점원이 웃으며 말했다.

진우는 멋쩍은 티를 최대한 내지 않으며 네, 이거 얼마죠? 하며 되물었다.

점원이 마네킹 신발 옆에 가격표가 붙어있다며 상냥하게 말해주었다. 22만8천 원이었다. 진우가 직전에 구매했던 정장보다 두 배 가까이 비싼 가격이었다. 진우는 태연하게 물었다.

“위, 아래 다 합쳐서요?”

점원은 다시 상냥하게 답해주었다.

“네 그럼요.”

이번에 진우는 이상하게도 겉으로는 살지 말지 고민을 했는데, 사실 속으로는 이미 사야겠다고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한번 입어 봐도 되죠?”

점원은 당연하다며 웃어 보였고, 적당한 사이즈를 찾아 건네주었다. 진우는 옷을 들고 피팅룸에 들어갔다. 옷을 재빠르게 갈아입은 진우는, 정장을 입은 상태로 나와 점원에게 보여주지 않고 피팅룸 안의 전신거울로 자신의 모습만을 보고는 흡족한 듯 다시 원래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이 사이즈로 할게요.”

 

터미널 안에는 사람과 사람이 따로 모여 각자의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쩌면 버스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진우는 백화점을 빠져나와 티켓 창구로 향하다 그만 팔짱을 낀 채 대형 TV 화면을 보고 있던 할아버지와 부딪혔다. “죄송합니다.” 진우는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사과한 후에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원래 얼굴을 마주 보면 사과하기가 어려운 법이며, 그렇게 어려운 일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더욱이 지금은 그런 것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진우에게는 그것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일이 있었다. 진우는 걸음을 옮기며 할아버지가 보고 있던 TV 화면을 흘끗 쳐다봤다. 아까 버스 타고 올 때 봤던 사람들이 피켓을 들고 있었다. 진우는 정장이 들은 쇼핑백을 한 손으로 꽉 쥔 채 티켓 창구에 가 말했다.

“익산이요.”

티켓 판매원은 펜으로 책상에다가 무엇을 쓰면서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 위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기요.”

약간 불쾌해진 진우는 티켓 판매원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판매원은 진우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며 계속 위쪽을 가리켰다.

“저기…….”

진우는 언성을 높이려다 판매원의 손이 가리키고 있는 곳을 보았다. 흰 종이가 붙어있는 칸막이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전국공공운수노조의 공동파업으로 인하여 일부 노선이 중단, 축소됨을 알려드립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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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

전북 익산

전북 남원

전북 장수

강원 태백

강원 동해

강원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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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니, 저기요. 뭐에요 이거?”

진우의 말에 판매원은 역시 진우를 쳐다보지 않고 말했다. 할 일 바쁜 티켓 판매원에게 진우는 사람이 아니라 단지 업무 대상일 뿐인 것처럼 보였다. 판매원의 그런 모습을 보고 진우는 그저 멍하니 입만 약간 벌리고 있을 뿐이었다.

“오늘부터 총파업이에요. 뉴스 안 보셨어요? 안내 문자도 갔을 텐데.”

“아니 그럼 뭐예요, 익산은 아예 안 가는 거예요? 익산 못 가요?”

진우는 망연자실하게 판매원에게 말했다. 쇼핑백을 쥔 진우의 손이 떨렸다.

“잠시만요, 저 진짜 가야 하는데……, 한 자리도 없나요?”

판매원은 손으로 종이를 만져가며 웃었다.

“아니 기사가 없는데 어떻게 가시게요, 예매사이트고 인터넷이고 도배를 해 놨드만……. 역으로 가 봐요, 여긴 안 돼.”

더 얘기하면 화만 날 것으로 생각한 진우는 발걸음을 돌려 택시를 타러 갔다. 터미널 앞 택시 승강장에는 택시가 여러 대 대기하고 있었다. 진우는 그중 맨 앞에 있는 택시로 다가가 창문을 두드릴까 하다가 문을 열고 말했다.

“기사님 타도돼요?”

등받이를 재껴두고 있던 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로 모실까요.”

“천안역으로 가주세요.”

“예.”

미터기를 켠 택시는 이내 출발했다. 신호가 걸려 멈출 때면 좌석 아래에 있던 진우의 정장이 흔들렸다. 기사가 말했다.

“어디 가요?”

“익산 갑니다.”

“뭐 전북 익산?”

기사는 놀란 듯이 되물었다.

“네.”

“지금 노조 새끼들 파업 중이라 아마 운행 안 할 텐데.”

“네? 무슨 말이에요, 그게?”

“자넨 뉴스도 안 보나. 민노총 새끼들 돈 올려달라고 협의할 생각은 안 하고 뻐대는 게 며칠 짼디 지금. 아마 노선 단축이다 썅 지랄이다 뭐다, 단축 운행한다고 용산, 천안밖에 운행 안 할걸.”

“기사님 잠시만요, 저 장례식장 가야 되거든요? 방금 전에 터미널에서 버스 파업한다고 매표소 아줌마가 역으로 가라고 해서 지금 역 가려고 택시 탄 건데, 무슨 또 파업이에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니 그렇게 같이하는 게 어디 있어요.”

절박한 진우를 보고 기사는 웃기 시작했다.

“하, 아니 그 아줌마가 당신이랑 얘기하는 게 여간 귀찮았거나 그 인간도 지 일에만 신경 쓰느라 기차 돌아가는 게 어떤지도 구분 못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겠지. 뭐, 그리고 아니, 뭐, 파업을 누구 편의 봐가면서 하나? 언제부터 그랬어? 자네 그렇게 어물쩍한 감이나 잣대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안 돼. 아직 젊고만. 이 시국에 가긴 어딜 가. 역 가나마나 다 필요 없어. 어차피 다시 돌아가야지, 뭐.”

진우가 소리 없이 한숨을 쉬었다. 택시 기사는 용케도 그걸 알아챈 듯했다. 기사가 말했다.

“그럼 지금 딱 말해. 뭐, 이걸로 가줘? 어디, 익산 어디까지 가는데, 역 기준 미터기 없이 16만 원. 어때, 갈 거면 지금 말해.”

진우의 가슴팍에서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

 

 

차창 밖은 스산하고 습했다. 진우의 입안에서는 역한 냄새가 조금씩 올라왔다. 기사는 진우에게 담배를 피워도 되냐고 물어봤다. 기사는 한 손으로 담배를 꺼내며 물었다. 진우는 바로 거부한다면 기사가 불쾌해할 거 같아 그냥 알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기사는 가는 동안 담배를 다섯 대나 피워댔다. 진우는 머리에 왁스를 발라 한껏 멋을 냈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이 들어와 그대로 머리를 망가뜨릴까 걱정이었고 그렇다고 바로 창문을 닫자니 온몸에, 그리고 정장에까지 담배 냄새가 밸 것만 같았다. 진우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밑에 쇼핑백 윗부분을 반듯이 접어서 닫아두었다.

“근데 자네는 뭐해? 학생이라고 불러도 되지?”

“네. 맞아요, 대학생.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급히 장례식장 내려가야 되는데. 내일 아침 9시에 발인이래요. 사실상 오늘 저녁까지 못 가면 안 되는 거죠. 그러다 뭐 터미널 역 왔다 갔다 하다가 이래 됐어요.”

“요즘 대학생들 힘들지?”

기사는 갑자기 다정하게 말했다. 진우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뭐 나 때는 개천에서 용 나고 열심히 하면 뭐라도 되고 그랬는데……. 그 뭐냐 요즘은 말이야, 그……. 소확행?”

“아, 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아, 그래 그거. 뭐 나 참, 그게 되나? 다 옛날 일이지. 요즘에 티비나, 거, 유투브 봐봐, 그런 거. 비교 대상이 얼마나 많아. 잘 사는 사람들 하며, 어린 나이에 외제 슈퍼카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며, 그러니 이런 마당에 내 친구가 잘 돼도 배가 아프지. 그 잘 된다는 게 물론 돈 많이 버는 거지만, 참나, 이러고 보면 사람의 속성이란 것도 참 모르겠단 말야. 의식이 있어야 되는데 의식이. 나 봐. 택시들 맨날 좃나게 파업하고 싸워도 꿋꿋이 하잖아. 나는 내 일하는 거에 있어서는 당최 어떤 일에도 안 휘둘려. 보이지?”

기사는 조수석 에어컨 위에 모범운전사라고 쓰여 있는 자신의 명찰을 가리켰다. 명찰에는 오 년 전쯤에 찍은 거 같아 보이는 사진이 있었다.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인데, 운전하는 지금 인상과는 다르게 몹시 순해 보였다.

“열심히 해야 돼, 열심히. 그럼 다 돌아오게 돼 있어. 하 근데 학생 배 안 고픈가? 저기 정안휴게소 잠깐 들를까. 뭐, 통감자라도 하나 먹고 가게.”

“네, 좋죠. 마침 저도 사실 배가 아파서. 기사님께 말씀드릴까 참고 있었는데. 좋죠. 너무 오래만 안 있으면요.”

“그렇구만.”

산 중턱 하늘이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진우가 탄 택시가 마지막 노을을 걷으며 휴게소로 들어왔다. 기사는 주차하자마자 서둘러 내리는 진우를 보며 말했다.

“일 보고 저기 먹을 거 파는데 앞으로 와요.”

진우는 뒤를 돌아보며 알겠다는 말을 제대로 꺼내지도 못한 채 화장실로 달려갔다. 대변 칸에 들어가 앉은 진우는 핸드폰을 꺼내 카카오톡 켰다. 전 여자친구의 프로필을 검색해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익산중앙장례식장 201호 특실’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진에는 텅 빈 빈소와 국화꽃에 둘러싸인 아버지의 영정사진이 보였다. 진우는 미나의 아버지 얼굴이 가물가물했기에 원래 이렇게 생겼었나, 아닌 거 같은데, 라고 잠시 생각을 했다. 밀린 대화를 확인해보니 세철이에게 ‘가는 중?’이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진우는 대답하지 않고 페이스북을 켜 SNS에 지인들의 소식과 각종 광고, 게시물들을 훑어봤다. 여행을 간 듯 해변에서 쭈그려 앉아 사진 찍은 윤송이, 혼자 맥주를 마시며 리뷰를 하는 문수, 투철한 안보관을 결의 있게 써 올린 전직 장교 출신 교수 등등 진우는 SNS에 올라오는 근황들을 하나의 이미지로조차 남기지 않고 그대로 흘려버리고 나왔다. 일을 마친 진우는 손을 씻고 거울을 보며 택시 안에서 바람에 흩날린 앞머리를 정리했다. 옆에서 핸드드라이어로 손을 말리고 있는 한 아저씨가 자신을 의식하는 걸 무시하고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어디서 들었을 법한 트로트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이런 상황에서 이런 느낌의 휴게소도 썩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하며 진우는 맥반석 구이 코너 앞으로 갔다. 음식을 파는 아줌마는 뭐 드릴까 물어보았지만, 진우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진우는 다만 어딜 갔는지 보이지 않는 택시 기사만 찾고 있었을 뿐이었다. 잠깐 물을 마시러 휴게실에 들어갔나 보다, 생각한 진우는 무엇을 먹을지 고르고 있었다. 진우는 그렇게 30분가량을 이것저것 따지고 재며 오만 상상을 하고 있었다. 결국 그 택시 기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

 

 

진우는 집에서 담배를 피웠다. 집까지 오는 택시비는 총 12만 원이 나왔다. 어제 진우는 정안휴게소에서 절망적인 마음에도 혹시나, 정말 혹시나 하여 택시 회사에 전화도 해가면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렸다. 통감자를 먹자던 택시 기사는 끝내 오지 않았기에 다른 택시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이미 휴게소에 잠시 들를 때 타고 온 택시에 정장을 두고 내렸고, 그 택시는 택시 기사와 함께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진우는 장례식장에 갈 마음이 싹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여곡절 근처에 있던 다른 택시를 잡아 집까지 안전하게 올 수밖에 없었다. 진우는 자신이 무사히 집에 당도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만 했고, 실제로 어느 정도는 만족했다. 자신이 이만큼 노력했다는 것을 되돌아보면 스스로에게도 후한 점수를 줘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땀을 많이 흘린 진우는 씻을 생각도 없이 잠이 들어 낮 두 시가 다 되어서야 일어났다. 눈을 뜨고 핸드폰을 확인했을 때 세철이에게 문자가 한 통 와 있었다.

‘야, 너 안 갔냐?’

진우는 답장하지 않았다. 대신 미나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여러분들의 기도 덕분에 아버지를 잘 보내드릴 수 있었어요. 찾아주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진우는 담배를 물었다. 냉동실에 얼려놓은 동그랑땡을 꺼내놓고 TV를 켰다. 뉴스에는 한 사람이 나와 생중계로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왼쪽 하단에 운수 노조위원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진우는 볼륨을 올렸다. “민중과 노동자들을 무시하는 파렴치한 정부와 여당, 더 이상 이런 압제에 견디지 못해 우리는 분연히 일어납니다. 다시 한번, 우리는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노동법 개정안을 즉각 중단하십시오. 노동자를 죽이는 이번 개정을 더 이상 우리는 가만두고 보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행동으로, 우리들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투쟁할 것입니다. 불편을 겪고 계실 국민 여러분께는 죄송하고 송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우리와 함께해주십시오.”

진우는 담배를 피우며 저 사람이 왜 국민에게 죄송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내가 저 사람을 용서할 자격이 있을지를 생각했다. 저 사람이 내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가를 따져봤다. 그러던 중에 화면 하단에 여러 뉴스거리가 지나갔다.

 

‘[사회]노사정협의체, 민주노총 불참으로 결국 합의점 찾지 못하고 불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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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아내 부고 소식 듣고 병원으로 가던 50대 택시 기사, 교통사고로 숨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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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진우의 핸드폰에서 전화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진우는 전화를 받았다.

“누구세요.”

“진천경찰서입니다. 김진우 씨 맞으시죠?”

“네.”

경찰은 진우에게 택시 회사와 기사의 이름을 알려주며 어제 그 택시에 탄 적이 있느냐고 물었고, 진우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경찰은 진우에게 출두를 요청했다.

전화를 끊은 진우는 먼저, 부서진 택시 안에 짓이겨져 있을 자신의 정장을 생각했다. 그러곤 운전대를 한 번도 놓아본 적 없이 꿋꿋이 열심히 산다는, 사진과는 다른 기사의 얼굴을 떠올렸다. 택시 요금과 반품된 정장, 그리고 자신의 대출확인서를 생각했다. 경찰서로 가기 위해 진우는 옷장에서 회색 트레이닝 바지와 검정색 티셔츠를 꺼냈다. 옷을 입고 나가려고 하는 찰나, 옆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진우는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옷장 옆 창문틀에는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거미 한 마리가 매달려 있었다.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조수현

 

관리자 press@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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